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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주의와 행정조사, 그리고 디지털 포렌식

KUO88 2017. 3. 30. 08:48

영장주의란??

과거 군사정권 시절 영장주의가 무시됐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이번엔 제대로 알아보고자 한다.

형사절차에 있어서 강제처분을 함에는 원칙적으로 법관의 영장을 필요로 하는데 이를 '영장주의'라고 한다. 수사기관이 법관에 의한 구체적 판단을 전혀 거치지 않고서 임의로 피의자에 대한 구속 등 강제처분을 막기 위한,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방패이다. 

헌법 제12조 3항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 다만, 현행범인인 경우와 장기 3년 이상의 형에 해당되는 죄를 범하고 도피 또는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을 때에는 사후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다시말해, 영장주의는 강제수사의 남용을 억제하고 시민의 자유와 재산을 보장하기 위한 사법적 통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든든한 방패가 디지털 포렌식 수사 시에는 무거운 짐이 되기도 한다. 바로 디지털 데이터의 특성 중 하나인 위·변조가 매우 쉽다는 점이다. 사람이 잠깐 날숨을 쉬는 짧은 찰나에도 저장매체에 있는 디지털 데이터는 숫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 만큼 변화가 일어난다. 또한 USB와 같은 저장매체는 담고있는 데이터의 중요도에 비해 그 크기가 매우 작아 증거인멸의 우려가 매우 높다. 또한, 그 특성상 수사 혹은 조사 대상을 명확하게 규명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

다행히도 사후영장, 긴급행위설(체포현장에서의 위험을 방지하고 피의자가 증거를 인멸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예외적으로 적용한 것) 등에 의하여 압수·수색에 있어 영장주의의 예외를 인정하고 있으므로 포렌식 전문가는 영장주의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수록 좋다.


행정조사는?

행정작용을 적정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각종의 자료나 정보 등의 수집을 위한 권력적 조사 작용이라는 협의설도 있으나 행정조사에는 권력적·비권력적 행위 일체가 포함된다는 광의설이 통설적인 견해이다.

수사기관의 수사만큼이나 국민의 권리의무 혹은 기업활동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행정조사로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금융감독원의 조사와 검사, 국세청의 세무조사, 관세청의 관세조사, 선관위의 선거범죄조사 등이 있다.

행정조사의 권한은 생각보다 막강한 편이다. 예로 공정거래법상 '영치'의 개념은 형사소송법상 인정되는 영치[각주:1]의 개념과 동일하다. 즉, 영치도 압수의 일종으로 수사실무에서는 대부분 영치의 형식으로 압수가 이루어진다(점유취득 과정에서 강제력이 행사되지는 않는다).


영장주의 행정조사

여기까지 잘 읽어왔다면 영장주의와 행정조사를 순서대로 설명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각종 행정조사는 영장주의 위배의 소지에서 완전하게 자유롭기 힘들다.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수사가 아닌, 과징금이나 시정명령 등 행정적 제재 또는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행정조사 과정에서의 강제처분 또는 행정상 즉시강제의 경우에도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문제이다.

관련 법으로는 헌법 제12조(신체의 구속 등에 영장이 필요함)와 제16조(주거의 수색 등에 영장이 필요함을 언급)가 있다. 이 문제에 대해 행정법학계에서는 3가지의 학설이 있다.

  • 부정설 : 영장주의가 발전해 온 연혁적 배경에 비추어 볼 때 이는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수사절차에서만 적용되는 원리일 뿐 행정절차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견해
  • 긍정설 :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이상 그것이 형사절차인지 행정절차인지 관계 없이 영장주의가 적용된다는 견해
  • 절충설 : 원칙적으로 긍정설에 입각하면서도 행정목적의 달성을 위해 불가피하다고 인정할 만한 특별한 사유가 있다면 사전영장주의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견해

관련 행정 기관에서는 부정설보다는 절충설을 통설적 견해로 받아들이는 듯하다(지극히 내 주관적 생각ㅋ 관련기관 지인들의 생각이 이러하다). 


영장주의 행정조사, 디지털 포렌식은?

권태기의 커플처럼 쉽사리 답을 찾을 수 없는 영장주의와 행정조사 사이에 디지털 포렌식이 끼어들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디지털 포렌식의 범위, 분야 대상을 한정하기 어려운 데다가 행정조사의 범위까지 고려하려니 상당히 난감하다. 그러나 현 시대에서 사건의 key가 되는 단서들은 모두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된다는 점에서 반드시 이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답을 찾는게 중요하다.

관세청, 공정위, 선관위 등 이미 디지털 포렌식 팀을 운영하고 있거나 운영 계획인 행정기관들에게는 차후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법적 논쟁에 대비하여 자신들의 논리를 세우고 법률적인 문제에 대한 깊이있는 고민을 하고 있는 듯 하다.

내 관점으로 봤을 때, 디지털 증거 수집(수거 혹은 영치) 문제에 가장 중요한 point는 다음 문장이다. 어찌됐든, 조사의 목적은 원칙적으로 행정처분을 목적으로 하나, 고발에 의하여 언제든지 형사절차로 이행될 수 있고, 조사절차 중 수집한 자료는 언제든지 형사소송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포렌식에 있어서 적어도 증거 수집에 대해서는 반드시 디지털 데이터가 증거 능력을 갖고 있도록 해야한다. 이는 어느 행정 조직이든간에 사후 형사소송절차에서 증거로 제출되는 경우 형사소송법상 증거능력을 갖추기 위한 디지털 증거 수집 체계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하게 된다.

사실 이보다 더 큰 산은 디지털 데이터가 전통적인 문서나 물리적인 물품과는 다르게 조사의 방식이 다르다는 점이다. 제대로 포렌식, 즉 사건의 인과관계 혹은 증거를 찾기 위해서는 디스크 전체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privacy의 침해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디스크 전체를 그냥 압수할 것인지, 아니면 복제본(이미징) 작업을 할 것인지, 아니면 선별압수를 해야할 지(이 경우 현장에서 디스크 분석 과정이 불가피하게 진행되어야 함), 분석을 하게 된다면 어느 정도의 선까지 해야할 지 등 그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하기가 일반적인 증거보다 상당히 까다롭다.

개인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행정기관에서 디지털 포렌식 체계를 구축하려면 법정 싸움이라는 성장통을 겪는 것은 불가피해보인다. 행정기관에 있어서 디지털 포렌식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분명하고 포렌식 체계, 업무 프로세스, 조사 대상 선정 및 조사 방법 등 여러가지 논란거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내리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디지털 포렌식을 아예 손놓고 안해버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물론 포렌식 도입 전부터 법률 문제에 대해 완벽하게 검토를 해야겠으나.... 그렇다고 법정 분쟁의 요지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행정조사의 디지털 포렌식에 대한 판례가 나오게되고 그에 따라 조직의 체계가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1. 소유자, 소지자 또는 보관자가 임의로 제출한 물건 또는 유류한 물건을 법원이나 수사기관이 영장없이 압수하는 것을 말함.(형사소송법 제108조) [본문으로]